완급조절이 아주 멋진 버전이다.
요요 마(馬友友,Yo-yo Ma)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이다.
1955년 10월 7일,프랑스 파리에서 중국계로서 음악교수인 아버지 마샤오쥔(馬孝駿,Hiao-Tsiun Ma)과 메조 소프라노가수인 어머니 마리나 루(盧雅文,Marina Lu) 사이에서 태어났다.
15번이나 그래미상의 영예를 수상한 요요마는 4세 때부터 첼로를 시작해 어린시절부터 신동으로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6세 때 파리 대학 예술고고학 연구소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질 정도의 천재였다.
1962년,그가 7세 되던해 그의 가족은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고,그는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레너드 로즈에게 배웠다.
이듬해 번스타인이 지휘한 TV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고,아이작 스턴과 카네기홀에서 함께 연주하는 등,미국전역에서 신동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이후 요요 마는 줄리어드 음대와 1976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말보로 음악제,아스펜음악제 등에 출연하기 시작했고,1977년부터는 유럽으로도 연주 활동의 폭을 넓혔다.
베를린 필,빈 필 등 최고의 악단과 협연한 그는 1978년에는 잘츠부르크와 루체른 음악제에도 출연했다.
워낙 어린시절부터 연주해 왔으므로 그의 연주 활동도 40년이 넘어섰다.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음반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첼리스트 중의 한사람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솔리스트로서 화려한 명성을 자랑했으나 실내악 연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영욱과 엠마누엘 액스와의 트리오 활동부터 아이작 스턴,제이미 라레도,초량린,리처드 스톨츠만 등과 파트너십을 이루며 이어온 실내악 활동은 최근에도 끊이지 않는다.
다재다능한 경력의 첼리스트 요요 마는 관객과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내는 데 앞장설 뿐 아니라,개인적인 예술적 성장과 변화를 추구하는 데도 멈춤이 없는 선구자적인 아티스트이다.
새로운 협주곡의 연주,널리 알려진 첼로곡 연주,실내악을 통한 음악가들과의 교류,서양음악의 전통 너머에 있는 문화와 음악 형태의 탐구 등 요요 마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결 고리들을 찾는 데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요요 마는 리사이틀 및 전세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솔리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자로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엠마누엘 액스,다니엘 바렌보임,크리스토프 에셴바흐,파멜라 프랑크,제프리 카안,톤 쿠프만,제이미 라레도,바비
맥퍼린,에드가 마이어,마크 모리스,마크 오코너,고 아이작 스턴,캐서린 스톳,우 만,데이빗 진만 등 장르를 초월한 많은
음악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영감을 얻어 새로운 프로그램을 창조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 작업은 아티스트들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 더욱 깊어져,특정 장르의 범주를 뛰어넘는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요 마가 추구하는 음악 활동 중의 하나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음악,아이디어 전달 매체로서의 음악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향해서,자신의 뿌리인 중국 음악과 아프리카 부시족의 칼라하리 음악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깊이 몰두해왔다.
이러한 관심사를 더욱 발전시켜,요요 마는 지중해로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고대 실크로드 무역로를 따라 형성된 문화적,예술적,지적 전통의 연구를 진흥시키고자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이 광대한 지역의 사상 흐름을 연구함으로써,실크로드 국가들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하고,오늘날의 전통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재확인하고 있다.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일련의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공통 자원을 가진 조직으로서 2002년 스미소니언 민속생활 페스티벌을 비롯한 수많은 페스티벌에 참가해왔다.
요요 마는 소니 클래시컬 전속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75장이 넘는 음반을 내놓았는데,이 가운데 15장의 음반이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다양한 음악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위촉 또는 초연한 작품들도 다수 녹음해 왔다.
로사 파소스,에그베르투 지스몬치,세자 까르고 마리아노 등과 함께 브라질 음악을 녹음한 “오브리가도 브라질”,바비 맥퍼린과
함께한 “허쉬”, “애팔래치아 왈츠”,그래미상 수상의 마크 오코너 및 에드가 마이어와의 “애팔래치아 여행”,그리고 피아졸라의
“탱고의 영혼” 등 크로스오버 음반은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요요 마가 최근 내놓은 앨범으로는 컴필레이션 음반인 “열정(Appassionato)”과 “새로운 불가능(New
Impossibilities)”,“클로드 볼링 - 첼로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바흐 첼로 모음곡 전곡”,“요요
마가 연주한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Yo-Yo Ma Plays Ennio Morricone)” 등이 있다.
2007년 7월에는 실크로드 앙상블,그리고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이브 앨범을 녹음했다.
또한 그는 롭 마샬 감독의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사운드 트랙을 담당한 존 윌리엄스를 위해 영화음악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다.
요요 마는 클래식 분야에서 베스트셀링 음반을 녹음하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다.
요요 마는 젊은 관객과 교류를 나눌 뿐 아니라 그들이 직접 참여토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주 여행을 하면서 가능할 때마다 마스터 클래스를 비롯하여 학생들을 위한 비공식 프로그램을 여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현재 요요 마는 아내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두 가지 첼로를 사용하고 있는데,베니스에서 만들어진 1733년산 몬태냐나 첼로와 171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인 ‘다비도프’로 연주하고 있다.
첼리스트 야노슈 스타커는 일찍이 요요 마가 가진 예술적 깊이와 스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첼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레퍼토리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독주자로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이다.
현존하는 첼리스트 가운데 로스트로포비치(현재 그는 세상을 떠남)와 요요 마 두 사람 정도가 첼로 독주자로만 활동해도 충분히 생을 영위할 수 있는 아티스트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자신도 위대한 첼리스트인 야노슈 스타커의 독백과도 같은 이 이야기는 오늘날 음악계에서 요요 마가 갖고 있는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음악가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음악적 깊이나 연주력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요요 마는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음악가이다.
우선 그는 클래식 애호가들뿐 아니라 폭넓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연주자다.
2004년에 그가 브라질의 뮤지션들과 함께한 음반 ‘오브리가도 브라질(Obrigado Brazil)’이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클래식 아티스트로서는 전례 없이 그래미상 15번째 수상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던 것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독주 레퍼토리가 현저하게 적은 첼로 분야에서 다양한 레퍼토리의 발굴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첼로 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또한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를 음악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는 야심 찬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요요 마의 이러한 행적들을 지켜보며 그를 유엔 평화 대사로 위촉하기도 했다.
인간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첼로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첼로의 명반으로 꼽을수 있는 것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일 것이다.
어렵기는 해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은 첼리스트들이 평생 지침으로 삼아야 할 '음악의 성서'일 뿐만아니라 흐트러진 음악의 자아를 추스르는 '거울'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때문에 카잘스도 평생 단 한번만 전곡을 녹음했고,로스트로포비치도 칠순이 넘긴 후에야 전곡음반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이 작품은 비올라,바순,클라리넷,마림바,호른.,플루트,리코더로 편곡되어 연주됐고 무용음악으로도 사용됐다.
최근 탱고와의 크로스오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첼리스트 요요마가 지난 1984년에 이어 두번째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음반을 내놓았다.
5년 간의 작업 끝에 CD와 비디오로 완성한 '바흐의 영감'은 해석,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과 함께 연주자의 내면풍경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통해 '낭만주의자 바흐' 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1984년 발표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빠른 템포 설정으로 약동하는 ‘춤곡’의 의미를 되살려 낸 참신한 해석이라는 찬성파와 너무 가볍고 경박한 ‘미국적인’ 연주라는 반대파가 갈렸다.
1998년 출반된 재녹음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영감을교류해 내놓은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아줄 만하다.
전작에 비해서는 진지함이 보태졌으나 여전히 높은 완성도를 갖진 못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의 연주는 보편적으로 템포나 아티큘레이션을 생동감이 넘치는 쪽으로 잡아가는 편이다.
한편 감정도 풍부해 과장이 심하다는 비판도 많이 듣는다.
너무 일찍 신동으로 각광받았고,지명도만으로 볼 때는 이미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첼리스트로서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님의 블로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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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초에 공연보고 가려고 했더니.. 식구들이 너무 바뻐..ㅜㅜ
2009/05/28 08:16 [ ADDR : EDIT/ DEL : REPLY ]6월초에 좋은 공연이라도 있나요? ㅎㅎ
2009/05/28 23:44 [ ADDR : EDIT/ DEL ]핑구님이 바쁘신게 아니고 식구분들이 바쁘시군요 ㅜㅜ
서울신포니에타 공연이요
2009/05/29 00:34 [ ADDR : EDIT/ DEL ]잘 감상했습니다.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 보기드문데, ^^
2009/07/21 10:11 [ ADDR : EDIT/ DEL : REPLY ]이봐 거기, 멋진 인터넷 사이트. 나는 질문이 특정을 발견하고, 나는 내가 않는 만족입니다. 내가 가장 확실히 항상 자주 아래 다시 올하자. , 채팅을 개선하고 문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전달하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내가 할 수있는 동안 현재 모든 정보를 먹고 있습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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